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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11월에 생각나는 인물들

2023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저 먼 곳에서는 오늘도 전쟁으로 하루에도 수 백명씩 목숨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역사적으로 11월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프랑스의 유명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일이 11월 2일이다. 이 미모의 왕비는 경솔한 언행과 음모로 인해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앙투아네트는 왕세자와 결혼하고 이 왕세자가 국왕 루이 16세가 되자 곧바로 국정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왕비가 된 이후  두 번이나 혁명이 일어났고 왕비 자리에서 물러날 뻔한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국왕은 1793년 1월 21일에, 그리고 앙투아네트 왕비는 같은 해 10월16일 각각 처형되고 말았다.        반면 앙투아네트와 생일이 같은 미국의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는 지금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포크는 뛰어난 정치로 미국의 번영을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제외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을 가장 충실히 이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1796년 출생한 포크는 1825년 하원의원, 1835년엔 하원 의장에, 1839년엔 테네시 주지사,  그리고 184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선 5년 후인 1849년 세상을 떠났다.    11월에 생각나는 많은 프랑스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다. 그는 군인이요 정치가로서 프랑스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1890년 11월22일 태어났다. 드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네 차례나 다쳤고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본 방드루란 여성과 1921년에 결혼했다. 드골은 1958년에 시민전쟁이 일어날 뻔한 시기에 당시 대통령 르네 코티의 요청으로 새 정부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제5 공화국’이다.  드골은 1958년 12월에 새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1969년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1970년 11월 9일 영면했다.     참 세월은 얄궂기도 하다. 드골의 생일날이 미국의 유명 정치인이 세상을 떠난 날이니 말이다. 바로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1963년 11월22일 괴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훌륭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인 43세에 당선된 인물이었다.     1917년 5월29일 뉴욕의 브클린에서 출생한 그는 1940년 하버드대를 졸업했으며, 해군 복무 후 연방하원의원, 연방상원의원을 거쳐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라.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인물 프랑스 인물 케네디 대통령 앙투아네트 왕비

2023-11-06

[열린광장] 나팔꽃처럼 아름다운 9월이건만

나팔꽃처럼 아름다운 9월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달도 갖가지 재앙 때문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 안고 있다. 가장 첫 슬픔이 1939년 9월 초하루에 일어났다.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올해 9월 8일에는 모로코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3000여명이 숨졌고 대홍수가 일어난  리비아에선 거의 6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김정은이 러시아의 푸틴과 위험한 딜을 하고 있는가 하면 미국 연방하원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탄핵 조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참으로 9월의 운명이 서글프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슬픈 일들이 일어날 줄 몰랐던 미국의 여류 정치가 H.H. 잭슨의 시가 떠오른다.   ‘여름날의 좋았던 날들이 지나가고/가을철의 훌륭한 일들을 생각하노라면/모든 사랑스러운 일들과 더불어/ 9월의 멋진 날들이 이제 다가오는구나! ’   영어로 9월을 뜻하는 '셉템버(September)'는 옛 로마 달력으로는 7월이란 뜻으로 라틴어의 ‘일곱’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런데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가 3월로 시작하던 달력을 1월로 시작하는 것으로 바꾼 탓에 이 일곱번 째 달 이름이 아홉번 째 달이 되었다.   나팔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9월에 태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을 두 번 할 수 있었지만 한 번으로 족하다며 두 번째는 사양한 인물이다. 1857년 9월 15일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미국 제27대 대통령을 지낸  윌리암 하워드 태프트가 그다. 그는 키 6피트에 몸무게는 300파운드나 됐다.   그는 첫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다시 대통령을 하지 않고 대법원장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원래 정치보다는 대법원 판사를 원했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 전 그는 20여년 동안 판사로 일했었다. 그의 어머니도 “내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달랐다. 태프트가 대법원 판사가 되면  일 중독자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는 것이다.     태프트는 1878년 예일대를 차석으로 졸업했고 신시내티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태프트는 1913년 3월, 백악관을 떠난 뒤 예일대 법대 형법 교수가 되었으며 1921년엔 W. G. 하딩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태프트는 말년에는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택에서 법정까지 매일 3마일을 걸어 다녔다. 그러나 심장질환으로 193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지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있는데 암살된 케네디 대통령이 그와 나란히 잠들어 있다.   끝으로 모두의 앞날이 나팔꽃처럼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강옥석(사파이어)처럼 맑고 튼튼하길 바란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나팔꽃 케네디 대통령 대통령 탄핵 대통령 취임

2023-09-21

[살며 생각하며]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말하는 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주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넷 자식이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링컨 기념관 앞에 운집한 25만명의 ‘흑인 인권시위대’를 향한 연설의 일부다. 그는 이날 다른 원고를 준비했으나 수많은 참가자의 불같은 열정을 접한 뒤 이 연설로 대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응은 획기적이었다. ‘I have a Dream’이란 명언은 방황하며 좌절 중인 수많은 젊은이에게 소망을 주었고 전체 연설문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와 함께 인류에 회자하는 가장 역사적인 연설로 평가되고 있다.   ‘어둠으로는 어둠을 물러낼 수 없습니다. 오직 빛만이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연설의 결론이다. 어찌 보면 킹 목사는 자신의 주도하에 382일 동안 이어온 흑인시위가 단순히 백인에 대한 증오심의 발로가 아니라, 어둠 가운데서 악과 불의로 치닫고 있는 미국사회를 창조주 하나님의 빛과 사랑으로 밝히려는 ‘의로운 기도 행진’임을 실토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볼 때 이는 1930년 3월 12일부터 4월 6일까지 인도 민중 6만여명을 이끌고 240마일을 걸은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운동의 소금 행진(Salt March)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이 꿈이 꿈으로 끝나는 듯한 아픔이 미국에 찾아왔다. 그의 죽음이다. 1968년 4월 4일 저녁 6시 1분,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모텔 발코니에 앉은 그의 뺨 아래를 한발의 총탄이 스치듯 관통했고 저녁 7시 5분 사망했다. 향년 39세, 아직 어둠과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보기 전인 젊은 나이에 말이다. 범인은 인종주의자이자 수배 중인 탈옥수 제임스 얼레이다. 탈옥수 신분인 얼레이가 어떻게 총기를 구매, 킹 목사 같은 유명인사를 암살 후 도주하되 위조여권으로 영국까지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를 놓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결과론이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는 법! ‘로자 파크스’는 풀려났고 버스가 피부색을 따라 좌석을 달리함이 위헌임을 대법원이 평결한다. 1964년 스웨덴 한림원은, 킹 목사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였는가 하면,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은 1월 20일을 (부시 대통령이 1월 셋째 주 월요일로 정정) 마틴 루서 킹 데이로 선포하면서 일반인의 생일이 국가 공휴일이 된 첫 사례를 남긴다. 그런 뒤 텍사스주에서 마지막으로 흑인 노예가해방된 지 156년이 지난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은, 6월 19일을 ‘JuneTeenth Day’라 하여 12번째 연방 공휴일로 공표한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고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쓰여있다. 어쩌면 킹 목사가 말하는 꿈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닐까? 바라건대 우리가 꾸는 꿈이 하나둘 실상이 되어이 땅에 사는 모든 이민자가 피부색 때문에 차별당하지 않는 좋은 나라 미국이 되길 소원해본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목사 케네디 대통령 레이건 대통령 부시 대통령

2023-08-04

[기고] 20년의 베팅, 윤 대통령 방미와 신냉전 동맹

#1. 70주년 팡파르를 위한 준비는 완벽했었다, 얼마 전까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였던 우리가 한미동맹 70년을 거치며 반도체·배터리·군수산업의 글로벌 강국으로 올라섰기에 이달 말 워싱턴에 가는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동맹 70주년을 자축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언할 만했다. 수 조원 단위로 미국 곳곳에 투자를 하는 대기업 리더들과 함께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 대통령이 기세를 올리는 것은 당연할 터였다.   #2. 하지만 대통령실 주변의 들뜬 분위기와 달리 시민들 반응은 심드렁하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단기 요인. 동맹관계에서도 종종 불거지는 도청 의혹이라는 난기류와 그에 대한 서투른 봉합. 둘째는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한미동맹 심화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프레이밍의 결핍. 단기 요인부터 보자면, 10여년만의 워싱턴 국빈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핵심 참모인 국가안보실장을 교체하였다. 이어서 한국 대통령실 참모들에 대한 미국 측의 도·감청 의혹이 대대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스라엘이나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서둘러 봉합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당황한 기색을 시민들은 알아채고 있다.   #3. 단기적인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앞으로 20년 우리 미래를 좌우할 역사적 베팅이라고 본다. 1961년 워싱턴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러 갔던 박정희 의장의 방미가 이후 20년 가까운 고속 산업화의 기틀을 다지는 베팅이었듯이. 반미 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단행한 한미 FTA도 이후 20년 한국이 제조업 선진국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이었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부각할 한미 간 4차산업 동맹, 인도-태평양 지역전략 등은 신냉전 시대 한국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베팅이다. 경제안보, 반도체 공급망, AI 협력을 새삼 재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 시점에서 신냉전 자유 동맹에 베팅하는 것은 불가피하고도 명백한 선택이다.   #4.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베팅을 설명하는 대내적 프레임이 빈곤하다는 점이다. 중도층과 청년세대는 한미관계의 심화·확대를 조건 없이 지지하지는 않는다. 명백하고 불가피한 선택일지라도 이를 정당화하는 설득의 언어는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은 마땅히 국가 대전략의 큰 그림과 한미동맹의 심화를 묶어서 제시해야 한다.   #5. 당대 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면 역사적 베팅도 얼마든지 퇴색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작고 단단한 체구에 강렬한 눈빛을 지닌 박정희 의장이 1961년 11월 백악관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하였을 때, 워싱턴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한국의 새 리더를 맞이하였다. 케네디의 의심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쿠데타 이전부터 박정희 의장이 미국 인맥을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한국군 장성들에 대해 반감이 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군대를 동원한 5·16 쿠데타는 당시 한국군 작전권을 통제하던 미국에는 체면을 크게 구긴 일이었다.   이 방문에서 박정희는 냉전시대 한미동맹의 기틀을 다지는 역사적 베팅을 던짐으로써 워싱턴과 국내를 놀라게 만들었다. 박 의장은 미국이 빠져들고 있던 베트남 전쟁에 한국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선제 제안했다. 아시아 냉전 동맹에 적극 뛰어드는 이 베팅이 이후 한국 산업화의 토대가 된 점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바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박 의장도 이러한 베팅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국군 베트남 파병과 한일회담 재개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파병과 한일회담으로 촉발된 1963년 위기는 결국 박정희 체제 전반기 최대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졌다.   #6.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이후 한미동맹의 글로벌화에 과감한 베팅을 감행하였다. 주변 참모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미국 부시 대통령이 요청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였고 이어서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노 대통령의 결단은 이후 20년간 우리가 제조업의 글로벌 선도 국가로 올라서는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지지층은 돌아서고 여당 내에서는 파병 반대, 한국의 식민지화를 울부짖는 이들이 속출하였다. 역사적 베팅으로 G10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던 노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는 쓸쓸하였다.   #7.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윤 대통령에게 한미동맹 강화는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궤도를 이탈했던 한미관계를 정상화시킨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 베팅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해양 자유주의 세력과 대륙 권위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있다. 자유주의 동맹은 우리에게 ‘명백한 선택’이지만, 리더는 역사적 선택의 빛과 그림자, 꿈과 리스크를 압축하는 ‘설득의 프레임’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큰 프레임 없는 역사적 베팅이란 없다. 장 훈 / 중앙대 교수·중앙일보 칼럼니스트기고 대통령 신냉전 한국 대통령실 케네디 대통령 대통령실 주변

2023-04-21

[기고] 이제는 국민이 변해야 한다

굳게 닫혔던 청와대 정문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됐다. 활짝 열린 청와대가 국민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선보이듯 활짝 열린 윤 대통령의 시대가 국민에게 밝은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 10일 한국에선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5년 동안 한국의 국정을 담당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고 대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민주국가인 한국에서 대통령의 교체는 매 5년마다 반복되는 행사이지만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정권교체의 주요 이슈가 대부분 경제성장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국 이후 지속되었던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이 흔들리고, 국민생활에서 미덕인 정직과 근면, 상식과 공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진영 중심으로 사분오열되는 등 국가가 위기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진보 성향의 정권은 무능과 무책임으로 사회적 분열만을 남긴 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국민이 주인이고,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정권에 이양됐다.     새 정권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파당적 이익 집단으로 전락한 정치인들의 집합인 국회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간의 진영싸움에서 장수(대선후보)간의 대결은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은 다수당의 오기로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승자의 진로를 방해하려고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어디서 왔는가? 국민 속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4류 정치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 아닌 내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수준을 높이든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권을 바르게 행사하여 올바른 일꾼을 뽑아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나라가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도 바뀌어야 한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라”고 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을 선출한 것으로 국민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선출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초심대로 진행되어 대한민국이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국민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잘 살아보세’라는 국민운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의식수준과 삶의 질이다.     ‘잘 살아보세’가 풍요로운 삶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기는 했지만 ‘물질만능’이라는 퇴폐적 사고방식을 만연시키기도 했다. 개인소득 3만 달러에 10대 경제대국의 위치에 오른 지금, 한국에 필요한 국민정신은 ‘잘 살아보세’보다는 ‘바르게 살아보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 각자가 바르게 살면서 반지성주의를 타파하고, 상식과 공정이 통하고, 자유가 존중되는 새 시대를 열어가야겠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기고 국민 국민 각자 민주국가인 한국 케네디 대통령

2022-05-20

케네디가 직접 발탁한 첫 흑인 경호원 58년만에 사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단행한 특별사면 대상에 미국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국(SS)의 첫 흑인 요원 에이브러햄 볼든(87)이 포함됐다.   현재 시카고에 거주하는 볼든은 사면 발표 하루만인 27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비밀경호국 요원으로 전격 발탁된 일화와 케네디 암살 전•후 비밀경호국 내부 분위기, 기소 후 58년간 멈추지 않은 명예 회복 노력 등에 대해 털어놓았다.   볼든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된 지 1년 만인 지난 1964년 비밀경호국 문건을 범죄 집단에 팔아넘기려 한 혐의로 기소됐고 재심까지 간 끝에 유죄판결을 받아 3년여간 복역했다.   그는 당시 비밀경호국 내부의 해이한 분위기를 지적하고 동료들의 인종차별적 언행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냈다가 미움을 사 기소된 것이라며 평생 무죄를 주장해왔다.   시카고 남부 토박이 볼든은 26세 때인 1961년 4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정치행사를 위해 찾은 시카고 맥코믹플레이스에서 임시 대통령 전용 화장실 보안 경비를 맡았다가 케네디 눈에 띄게 됐다.   볼든은 "대통령이 나를 보고 화장실 문 앞에 멈춰서서 '백악관 경호실에 흑인 요원이 있었나'라고 묻길래 '없는 걸로 안다'고 답했더니 '최초의 흑인 비밀경호 요원이 되겠냐'며 채용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두 달 후 볼든은 들뜬 마음으로 워싱턴DC에 도착, 비밀경호국에 합류했다. 그는 케네디 가족이 자주 찾던 매사추세츠주 하이애니스 포트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이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준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 가 현실을 깨달았다.   그는 "동료들이 인종적 욕설을 하며 차별했고 대통령이 나를 잘 대해 주면 더욱 괴롭혔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국의 화합을 사명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며 "암살당할까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볼든은 당시 대통령 경호가 느슨한 데 충격을 받았다면서 "근무 중에 술을 마시고 여성들을 탐닉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요원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상사에게 보고했다가 외려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목숨 바쳐 대통령을 지키겠다 맹세했고 그 과정에서 내 정신력도 강화됐다"며 "덕분에 수감 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공부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다졌다"고 말했다.   볼든은 1963년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후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구성된 '워런 위원회' 측과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시카고로 호송돼 1964년 위조범죄 집단 두목에게 5만 달러(약 6천300만 원)를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케네디 암살 사건의 여파로 나에 대한 기소가 이뤄졌다"며 2차례 재판 끝에 1966년 6년 형을 받고 수감, 3년 3개월 복역 후 가석방됐다고 밝혔다.   볼든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사면 청원을 했으나 거절됐고 이후로도 백악관은 줄곧 침묵했다.   볼든은 계속 시키고에 살면서 자동차 품질 관리 감독자로 일하다 2001년 은퇴했다. 그는 부인의 권유로 회고록을 쓰기 시작해 2008년 '딜리 플라자(케네디 암살 장소)의 메아리'를 출간했다.   볼든은 바이든 대통령이 78명의 첫 사면•감형자 명단에 자신을 포함해 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암울했던 시절, 힘과 용기와 의지를 보여준 가족들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백을 입증받으려는 노력이 번번이 실패로 끝났으나 60년 만에 결국 승리했다. 나의 사면이 정의를 위해 싸우고 진실의 편에 서려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기자케네디 경호원 케네디 대통령 케네디 암살 케네디 가족

2022-04-28

[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부동의 평강을 위하여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금요일 상공회의소가 마련한 조찬 미팅에서 서부의 모자를 하나 선물 받았다. 사진 기자들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도록 케네디에게 써보라고 권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그 다음 월요일에 백악관으로 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은 그 날 오후 달라스에서 암살당했기에 다시는 백악관에 돌아가지 못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항상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살아가고 있는 방향,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가고 곳에 대하여서는 생각하고 기대하는 바가 있을 때 혼동이나 방황이 적은 행로가 될 것이다.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살아가면서도 흔연하게 내일을, 한 해를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날을 염려하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습관을 만드는 동물로 정의될 만큼, 예상이 가능한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내고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불청객이나 기대치 않은 일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상에 불쑥 끼어드는 일이나 놀라게 되는 일은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어도 계획에 차질을 빚고, 일상을 흔드는 것이라면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삶에 무언가가 끼어들어 기존의 상황을 흔드는 일이 없이 도약적인 발전이나 참신한 방향 전환이 일어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의 위대한 일들은 급작스런 변화와 개입으로 일어났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새 창조의 부분으로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여러 부분에 걸쳐 급작스런 변화나 생경한 일들에 대해 예비하도록 권면한다.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의미는 예기치 못한 일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삶에 찿아드는 불청객이나 예기치 못한 사태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며 삶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당면한 상황을 수용할 줄 아는 융통성은 자기가 세운 목표나 심지어는 각자의 개성까지도 포기하고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임을 인정할 때 가능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그것을 순종이라고 하고, 또 겸손이라고 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 때론 고통에 대해 어떤 대답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다른 관점을 찿고, 궁극적으로 숨겨진 의미나 축복의 실마리를 구하는 것이 신앙여정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히브리서에 나와있다. 결코는 확실한 약속이며 하나님을 찿는 이를 위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다는 뜻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인생의 전부라면 나이만 고려해도 많은 이들의 삶은 이미 승패가 나있고 남은 생이 뻔하다. 그러나 피조물의 세계를 넘어 창조주의 세계와 그 약속을 그리고 기대하는 삶이라면 일상의 사건 때문에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치 앞을 예견하지 못하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부동의 평강을 새해의 계획표 아래 받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위한 기도”는 흔들림 없는 평강을 위한 대표적인 기도문이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루하루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 누리게 하시며/ 고통을 평화에 이르는 시련쯤으로 받아들이게 하옵고,// 죄로 물든 세상을 내 원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옵시며,// 당신의 뜻에 순종할 때/ 당신께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것을 믿게 하셔서,// 이 땅에서는 사리에 맞는 행복을/ 저 세상에서는 다함이 없는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옵소서.” 위로부터의 평강이 임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종려나무 교회 목사, Ph.D www.palmtreechurch.org]     최선주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부동 평강 케네디 대통령 에프 케네디 계획표 아래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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